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치치지마 식인 사건 (문단 편집) === 원인 === 사실 전쟁 중에 고립된 부대가 식량이 부족해서 식인을 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.[* 사실 대기근 같은 상황에서의 식인은 역사를 보면 거의 항상 있어 왔다. 이것에 대해서는 [[식인]] 문서를 참고하자.] 소련군도 [[레닌그라드 공방전]]에서는 식량이 심각하게 부족해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먹는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서 따로 식인을 막기 위한 임시 자경대를 만들어야 했고 [[독일 국방군]] 제6군도 [[스탈린그라드 전투|스탈린그라드에 갇혀서 보급이 안 되자]] 시신을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. 일본군 역시 기아에 허덕이다가 [[인육]]을 먹는 사례가 자주 있었다. 열대 섬이라는 특수 환경[* [[열대 우림 기후|열대우림]]은 결코 채집이나 둔전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. 그래서 '''녹색 사막'''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런 [[이오지마|척박한 기후의 작은 섬]]에 20,000명이 넘는 병력이 주둔한 적도 있으니...]에 고립되었거나 연합군에 의해 보급선이 박살나서, 혹은 그 두 가지 원인이 모두 겹쳐 식량이 부족해진 것이 이유였다. 대표적인 예로는 [[나무위키]]에 등재된 [[밀리환초 학살사건]]을 들 수 있다. 다른 사례로는 1944년 12월 뉴기니 전선의 육군 제18군사령부가 >'''"연합군의 인육을 먹는 것은 허락하지만 아군의 인육을 먹으면 엄중하게 처벌한다."''' 는 지침을 내리고 이를 위반한 [[병사]] 4명을 처벌한 것을 들 수 있다.[* 1946년 12월 11일에 있었던 [[극동군사재판]]에서 밝혀졌다.] 그래도 앞서 언급한 예시들은 먹을 것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질렀다는 점에서 그 정상을 참작할 만한 부분이 있다. 그러나 치치지마 식인 사건은 식량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태도 아니었고 '''살아 있는 사람도 죽여서''' 먹었다는 점에서 상기의 사건들과는 궤를 달리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다. [[미군]]은 처음에는 식량 부족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나보다고 생각했지만 상술했듯 치치지마의 일본군은 결코 '''식량 부족 때문에 식인을 한 것이 아니었다.''' 당시 치치지마의 식량 상황은 (쌀 배급량이 5홉에서 3홉으로 줄기는 했지만[* 대충 [[소주]] 2병을 쌀로 채운 것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. 충분한 양은 아니지만 식인을 생각할 정도로 부족한 건 아니다.]) 본토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기 때문이다. 조사 결과 사건의 동기는 어처구니없게도 '''[[식인]]을 통해 수비대 장병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서'''였다고 한다. 처벌이 엄청나게 셌던 것도 이 때문이다. 고위 장교 몇몇이 인육에 술파티를 벌인 목적이 병사들의 사기 진작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. 어쩌면 소(小)영웅주의나 엽기적인 호기심, 그리고 [[포로]]를 학대하는 [[일본]]의 군사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인지도... 혹은 '''특별한 술안주가 먹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.''' 식인을 저지른 자들에 대한 괌에서의 재판 경과와 증언들을 감안했을 때 이쪽이 더 '''신빙성이 높다.''' 자세한 증언들은 [[다치바나 요시오#s-2.4|괌에서 열린 이 식인종들에 대한 군사 재판]]을 참고하자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